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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시리즈/암세포라 불리는 사나이 (完)

[암세포라 불리는 사나이] 20.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by 레이콘 2020.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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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라 불리는 사나이] 19. 악성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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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라 불리는 사나이] 프롤로그

-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적은 수필이며, 지명, 시간 등은 실제와 거의 같지만 인명은 가명을 사용 하였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2019년. 지금도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회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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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적은 수필이며, 시간, 지명 등은 실제와 거의 같으나 인명은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암세포라 불리는 사나이] 20.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3월이 되어도 여전히 추운 날씨이지만, 비교적 추위가 많이 사그라들기에 봄을 준비하곤 한다.

그리고 회사도 봄을 준비하는 듯, 3월이 되자마자 암세포가 20일까지 하고 퇴사를 한다는 엄청난 희소식이 들렸다.

마침 생일이 3월 19일이었기에 인생 최고의 생일 선물로 느껴져 듣자마자 아주 날아갈 듯이 좋아했는데, 차장님께서 그런 나를 보시고는 말씀하셨다.

 

"섭섭, 점마(암세포) 다다음주까지 하고 그만둔다는 거 들었나?"

 

내가 워낙 쌓인 게 많았다는 것을 아셔서 그런지 바로 물어보신 것 같았다.

 

"네 들었어요. 마침 생일 다음날이던데, 생일 선물을 이렇게 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요!? ㅋㅋㅋㅋ"

"ㅋㅋㅋㅋ 19일이 생일이가? ㅋㅋㅋㅋ 좋네. 그런데 예전에 내가 점마한테 한 번 물어봤거든. '그만두실 거죠? 계속 다닐 거예요?' 이랬거든. 그러니깐 3월에 진주로 이사 간다면서 막 그러데? 왜 가냐고 물어보니깐 집안이 좀 힘들고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더라고."

"?? 거 참 이상하네요... 이사는 절대 못 갈 건데..."

 

순간 머릿속에 물음표가 맴돌았다.

부산에서 사진 찍는 스튜디오를 공동으로 창업을 했는데 그걸 내버려 두고 진주로 이사 간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았지만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그럴 대가리가 되지 않으니 진짜인가 싶기도 했다.

그렇게 혼자 어이가 없어서 웃고 있는 나보고 더 말씀하셨다.

 

"아 맞다, 점마 뭔 사진 찍는다고 그랬지 않나?"

"네. 그 부산 저기 어디서 스튜디오 공동으로 사업자 등록까지 했습니다. 처음엔 안 믿었는데, 제가 로고도 한번 샘플로 만들어 준 적도 있었고 톡방도 직접 봐가지고 확실한데... 아 그냥 몰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알아서 하겠죠. 이제 볼 일도 없고 완전히 끝입니다."

 

어차피 생각을 해봤자 정신만 피폐해지는 데다가 퇴사를 하면 완전히 끝이기에 신경을 끄는 것이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한 나의 그 방심이 또 다른 발암을 불러일으킬 줄은 생각도 하지 못하였다.

 

 

암세포가 퇴사하기 하루 전인 3월 19일, 회사에는 진짜로 일이 하나도 없어서 청소만 주구장창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도 너무 안 가고 정신만 멍해지는 것 같았기에, 그냥 생일 기념으로 연차를 쓸 생각으로 차장님께 급히 말씀드렸다.

 

"차장님, 일도 없는데 내일 연차 써도 됩니까?"

"연차? 아 지금이 딱 쓰기 좋긴 하네. 그런데 니 내일 저기(암세포가 있는 부서) 지원 갈 수도 있어서 안 될 것 같은데?"

"...네..?;;;"

 

본래 월 말에 다음 달 연차 계획을 미리 적어놔야 되는 것이기에 연차를 못 쓰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하필, 그것도 생일 다음날에 마치 생일빵인 마냥 암세포와 같이 일을 하라니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아;;; 차장님;;; 이거 생일빵도 아니고 제발 저기는 좀;;; 아;;; 진짜 가야 된다면 일이니깐 가긴 하겠지만 저기 만큼은 좀;;; 아;;;..."

"..?! 아 맞다. 그걸 생각 못 했네;"

 

잠시 정적이 흘렀고, 이내 다시 말씀하셨다.

 

"섭섭아, 별로 마주칠 일 없을 거다. 어차피 저기서는 니한테 많이 시키진 않을 거고, 벤딩끈 자르는 것 위주로 시킬 거라 괜찮을 거다. 나도 내일은 여기 말고 다른데 있을 거고 전부 다른 곳에 지원 가니깐, 내일 금요일이기도 하고 하루만 잘해보자."

"네..."

 

영혼이 나갈 것만 같았지만 그래도 나의 감정보단 일이 먼저인 것은 분명하기에, 공과 사는 구분하자는 생각으로 하루만 참고 해보려고 했다.

 

 

그렇게 3월 20일, 결전의 날이 밝았다.

출근을 하자마자 황 대리님이 오시더니 웃으며 물어보셨다.

 

"섭섭아, 표정이 왜 이리 안좋노 ㅋㅋ"

"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생일인데 생일빵 제대로 맞는데요 하..."

"어제 많이 마셨나 보네?"

"아뇨, 점마(암세포) 저거 하... 점마 그냥 지금 집에 보내뿌죠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에효 섭섭아... 니가 고생이 많다. 힘내자."

 

빡치는 감정을 숨기려고 노력은 했는데도 불구하고 표정이 어지간히 썩어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이렇게 든든한 아군들이 있으니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는 감정으로 시작한 아침이었다.

 

 

일은 코일을 걸고 판으로 자른 뒤 파렛트 위에 겹겹이 쌓아서 마지막 부분에서 나오면 벤딩끈으로 벤딩을 하는 일인데,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암세포는 당연하게도 마지막 부분에서 벤딩만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나도 벤딩만 해야 되기에 계속해서 암세포의 상판떼기를 볼 수밖에 없었는데, 계속 보고 있자니 정신이 돌아버릴 것 같아서 조금 하다가 코일을 거는 맨 앞부분으로 피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피신을 하여 죽치고 있으니 이 부분을 담당하는 신 대리님이 나에게 물어보셨다.

 

"섭섭, 니 왜 계속 여기있노?"

 

나는 듣자마자 한숨을 쉬고 고개를 떨구며 말을 했다.

 

"하... 저기 암세포 상판떼기 보고 있으니깐 정신 나갈 것 같은데요... 여기 코일 거는 것은 슬리터(내가 있는 부서)와 똑같아서 할 줄 알기도 해서 그냥 피신했어요."

"ㅋㅋㅋㅋㅋㅋ 저 사람 오늘까지만 하고 나가는데, 하필 또 마지막 날에 이렇게 왔노."

"어차피 마지막 날인데 그냥 지금 집에 보낼까요? ㅋㅋㅋㅋㅋㅋㅋ"

"걍 보내라 ㅋㅋㅋ"

 

당연하겠지만 어디서나 버림받는 암세포였다.

하지만 전혀 불쌍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흘러서 오전 10시 40분쯤 됐는데, 갑자기 암세포가 이상한 손짓을 하며 뭐라뭐라 씨부리는 것이었다.

 

"!%섭, 즈...즈....&&*@...그...!@$%^&*()"

 

뭐라고 쳐 씨부리는거야.

분명 욕을 한 것은 아닌데 듣자마자 기분이 더러워졌다.

그리고 얼마 뒤에 이 부서의 팀장인 김 차장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말씀하셨다.

 

"섭섭아, 좀 쉬다 온나."

 

암세포가 씨부린 것이 이런 말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회사는 오전에 한 번 오후에 두 번 쉬는데, 시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서 적당히 갈 수 있을 때 한 명씩 돌아가며 쉬곤 했다.

그래서 김 차장님은 암세포에게 전달했는데, 문제는 암세포의 발음이 제4외국어 수준에 바이러스가 걸려 고장 난 좀비 AI이기에 나는 알아듣지 못하고 소통이 되지 않은 것이었다.

 

충분히 쉬고 돌아오니 갑자기 메인 조작판에서 호출 소리가 들렸다

 

'빵빵~ 빵!빵!빵! 빵빵빵빵빵빵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소리를 듣고는 모두가 메인 조작판으로 집중이 되었지만 발암력의 유일신 암세포만 구석에 박혀서 혼자 궁시렁궁시렁 씨부리고 있었고, 그렇게 20초가 지난 뒤에야 긴 잠에서 깬 좀비 40세 진도겸씨가 급히 달려갔다.

그리고는 머리 끝까지 성질이 난 차장님이 소리를 지르며 말씀하셨다.

 

"닌 귀를 좀 열고 있어라!! 호출을 하면 봐야지 몇 번이나 해도 못 듣노!!!!"

 

분명 여기서 털리는 것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인데도 불구하고, 표정과 상황이 예전과 너무 한결같이 똑같았기에 데자뷔를 보는 것만 같았다.

 

 

오후에는 다행히 거의 마주치지 않고 순조롭게 마무리가 되어 어느덧 퇴근 시간이 되었다.

평소와 같이 모여서 인사를 하고 끝날 무렵, 김 차장님께서 말을 덧붙이셨다.

 

"도겸이, 이제 가는데 앞에 나가서 마지막 인사라도 해라."

 

그 말을 듣고 암세포가 어슬렁어슬렁 앞에 나가더니 이내 말을 했다.

 

"어....... 집안 사정 때문에... 이..이렇게 가게됐...는데... 더...덕분에 여기... 잘 있다 갑니다.

 

저 더듬는 말을 들으니 개빡치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이제는 정말로 끝이라는 생각에 오르가슴을 느낄 것만 같았다.

 

1980년생 40세에서 41세로 올라간 암세포...

1미터가 몇 밀리미터인지 이제는 알겠고...

사진은 제대로 찍는 사진 기사는 맞는 것 같고...

말을 해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좀비에...

해오라기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고...

헬스를 해서 뭐든지 다 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포병에 대한 자부심이 높고...

뭐든지 열심히 하는 열정 사원에...

자연스레 지능이 상승도 되고...

바이러스가 걸리면 동작 불가능한 로봇이 되며...

회사를 지키는 암하르방이라...

너무나도 유명한 명물이고...

과도기엔 대가리도 포맷해주고...

정신적인 충격도 간간히...

숫자를 읽지 못하기도 하고...

한 평생 잊혀지지 않을 살인 미소로...

사람을 폭발시켜버리고...

장점이라곤 존재하지 않으며...

곳곳에 발암력이 가득한 바이러스를 심어놓고...

호루라기를 불고 싶어 하고...

끊임없이 악성코드를 전염시키는...

이제 진짜로 끝난 X발것의 암세포...

 

정말...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다시 한번 큰 깨달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정말... 끝인 것만 같았다...

일을 하면서 힘들거나 짜증 나는 일도 있고, 여유롭게 쉬엄쉬엄 하며 웃길 때도 있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갈 때도 있는 등 여러 가지의 상황들이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그런 기억들이 채워지면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모두가 지금 보다는 풍족하고 행복한 인생을 꿈꾸며 열심히 살아가기도 하고.

 

암세포는 끝났지만 나의 인생은 계속되기에, 앞으로도 나는 현재 진행형을 달릴 것이다.

아직 나는 끝나지 않았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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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라 불리는 사나이]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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