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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적은 수필이며, 지명, 시간 등은 실제와 거의 같지만 인명은 가명을 사용 하였습니다.
회사에서는 매년 12월이 되면 설문지를 적는다.
익명으로 매출 증대 방안, 개선 사항, 단가 절감을 위한 방안, 우등 사원, 열등 사원 등을 적어서 사장님께 직접 전달되는 것인데, 아무것도 안적어도 사실 상관은 없지만 너무 비어있으면 좀 그러니 뭐라도 찾아서 적은 뒤 밀봉된 상자에 넣었다.
그리고 모두가 제출한 뒤 어느날 아침, 팀끼리 모여서 조회를 하는데 차장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 다 적어서 내셨죠? 근데 그건 사장님께 직접 가는건데, 도대체 이상하게 적어서 낸 사람은 진짜 뭐하는 사람일까 이해가 안가네 진짜. 와... 불만 사항이 있으면 직접 말해서 풀 생각을 해야지 나원..."
들어보니 누군가가 정말 이상하게 적어서 논란이 된 것 같았고, 대리님부터 한 명씩 물어보기 시작했다.
"동민이 닌 개선 사항 잘 적었제?"
"네. 그냥 딱히 적을 것도 없어서 지금처럼 하면 된다고 적고, 그 제일 밑에 열등 사원 빼고 다 적었어요."
"그럼 섭섭. 닌 다 채워 넣었나?"
"네. 진짜 추가로 할 게 없어가지고 지금하는거 적어서 현행 유지 이렇게 적어서 냈죠."
"이상한거 적은거 아니제? ㅋㅋ"
"음... 잘 참았습니다 ㅋㅋㅋㅋ"
"그래그래. 도겸씨는 어떤 것을 적었어요?"
"아...음... 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순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도대체 뭐라고 썼길래 그냥 물어본 질문에 이렇게 더듬거릴까... 아니 그 전에 뭐가 그렇게 쳐웃길까.
사실상 물어볼 가치도 없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더 물어보셨다.
"웃지만 말고 대답을 해보세요. 뭐 이상한거 적은거 아니죠?"
"그...그......딱히....생각나는...게...ㅋㅋㅋ...없었...그...ㅋㅋ...."
"아니 말을 똑바로 해보세요. 그냥 물어보는 거라니깐요."
"그...ㅋㅋㅋㅋㅋ..........그....."
아오 X발 옆에서 듣고있는데 진짜 쳐죽여버리고 싶었다.
진짜 일부러 쳐맞고 싶어서 작정을 하는 건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쳐웃기만 하고, 한국어를 배우지 못하였는지 말도 제대로 못하며 시간만 끌고 있었다.
그렇게 무려 3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고, 도저히 못들어주겠어서 차장님께서 아주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하셨다.
"열등 사원에 누구 적었어요?"
"아...그..ㅋㅋ.....그..."
한층 당황한 기색이 보이는 암세포였다.
계속 어물쩡 거리면서도 뭐가 그렇게 쳐웃긴지 실실 쪼개고 있는 암세포를 보고 차장님이 다시 한번 물으셨다.
"누구 적었어요? 적으면 적었다, 아니면 아니다 말 좀 해보세요. 뭐가 그렇게 웃긴데요?"
"그... 차장님... 그......적었....ㅋㅋ....ㅋ........."
"저를 적으셨어요?"
"네...그...그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X발 순간 내가 잘못 들은건가 싶었다.
하지만 모두가 벙찐 표정으로 있는 것을 보고는 잘못 들은게 아니라고 확신이 들었고, 나는 이 암세포를 갖다 버려야만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뼈져리게 느꼈다.
"참나...ㅋㅋㅋㅋㅋㅋ 대체 왜 적었어요? 제가 뭘 했어요?"
"아..그.....ㅋㅋㅋㅋ..ㅋㅋ...적으면..."
"왜 말을 똑바로 못해요? 한국어 안배우셨어요? 영어로 해드릴까요? 대체 왜? Why? Why 열등 write?"
"그....열정적인....사원...인..줄....ㅋㅋㅋㅋ..알고......"
리그 오브 레전드(LOL)에는 페이커(Faker)가 있고, 피겨에는 김연아가 있고, 그리고 축구에는 리오넬 메시가 있다면, 말같지도 않는 개소리를 하는 데에는 이 암세포가 있을 것이다.
물론 진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멍청한 암세포이기에 열정과 열등을 헷갈렸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면 거짓말을 할 능력이 안돼서 '적지 않았다'라는 말을 할 수 없었고, 그 뒤에 수습하기 위해...물론 수습도 아니지만 억지로 본인이 할 수 없는 거짓말을 어떻게든 만들어서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점은, 전자든 후자든 1980년생인 40세 진도겸씨가 세계에서 제일가는 멍청함의 끝판대왕을 보여주는 진정한 암세포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암세포가 회사를 나가지 않는 한 계속 같이 일을 해야한다는 인생무상을 제대로 깨닫게 해 준 사실도 부정할 수가 없었고... X발... 차라리 물구나무를 서서 ㄸㅗㅇ을 싸는게 더 쉬울 것만 같았다.
이후 열정 사원은 회사에서 최고의 이슈가 되어, 같이 일하기 싫은 사람을 열등 사원에 적고 열정 사원인 줄 알았다며 적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그리고 나는 정말 멍청하게도 겸업을 했을 때보다 더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이유를 단순히 이 암세포 하나 때문이라는 사실을 드디어 알게 되었고, 이때부터 암세포를 단순히 끔찍한 존재로 생각할 정도가 아니라 없어져야 된다는 증오와 분노의 감정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나는 조회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차장님께 직접 '저런건 회사에서 내보내야 된다'고 강력하게 어필을 했는데, 그냥 단순히 말을 전달하는 정도가 아니라 웅변 대회를 연상케 할 정도로 하나하나 열정적으로 설명을 했다.
스튜디오와 마케팅 관련 일까지 하기에 실업급여는 어차피 못받을것이고, 만약 받는다고 하면 책임지고 부정수급 신고를 할 것이고, 그리고 만약 진짜로 실업급여를 받는 순간 '퇴직금을 받지 않고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선언까지 아주 눈에 뵈는게 없을 정도로.
정말... 겸업을 할 때가 그리워지는 날이였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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