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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수필이며, 지명, 시간 등은 거의 같지만 인명은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어느 날, PVC(비닐 테이프)를 붙이며 가공을 하는 작업을 하던 때였다.
PVC를 붙일 때에는 진행 중 전부 소모하면 똑같은 사양으로 교체하여 다시 붙이는데, 교체할 때 시간이 조금 걸리기에 멈춘 상태에서 교체해야 된다.
그래서 가공하던 제품이 멈추면 모두가 자연스레 코일을 푸는 시작 부분으로 가서 일을 도왔고, 이 날도 똑같이 가공이 멈추었고 자연스레 도우러 갔다.
그리고 PVC를 교체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나 당연하게도 퇴화에 퇴화를 거듭한 암세포는 보이지 않았고, 차장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섭섭, 점마(암세포)는 저기서 뭐하노?"
"그냥 서있는 것 같은데요..."
"ㅋㅋㅋㅋ X발 지금 코일이 돌아가지도 않는데 저기서 대체 뭘 보는거고? 진짜 정신이 나간 것 같다. 뭔 말을 해도 알아듣지도 못하고, 혼자서 맨날 궁시렁 대는데 미친놈 같으면서도 무섭기까지 하다. 저거 어쩌면 좋노?"
평소에 혼자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항상 뭔가 궁시렁 대는 암세포였다. 물론 PVC를 교체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마 혼자서 무언가를 씨부리고 있을 것이고.
도대체 뭐라고 쳐씨부리는지 알고 싶어도 근처에만 가면 쥐죽은듯이 닥치고 있어서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렇다고 물어봤다간 또 그냥 쳐웃을 것 같은데다가 나의 인생에 해로움이 가득할 것 같아서 그냥 속편하게 포기했다.
PVC가 상태가 너무 안좋아서 이것저것 뜯는다고 교체하는데 10분이나 걸렸고, 다시 시작 할려는 찰나 드디어 긴 잠에서 깬 좀비 바이러스, 1980년생 40세 암세포가 오는 것이였다.
그리고 나는 정말 멍청하게도 뭐했냐고 물어봤고, 돌아오는 대답은 정말 가관이였다.
"도겸이형, 뭐하시다가 이제서야 오셨어요?"
"나...그냥... 저기서...보고있었...지"
X발. 물어본 내가 개병X이다.
분명히 돌하르방인 마냥 가만히 서있었는데 뭘 쳐봤다는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일을 하면서 집중력이 흐트러져 정신이 멍해질 수는 있지만, 그게 무려 10분이나 되는건 이해가 가지 않을 뿐더러 일을 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 뜻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깊은 한숨이 나오는 하루였다...
며칠이 지나고, 갑자기 추워진 12월의 어느날이였다.
겨울이지만 이상하리만큼 유독 추운날이 없었는데, 갑자기 추위가 제대로 몰아친 것이다.
그리고 이 암세포는 피부 조직들도 전부 퇴화해버린 좀비라서 그런지 추위에 아주아주 약했는데, 무려 기온이 15도 정도 됐을 때부터 안전모 안에 비니를 쓰고 목토시까지 했을 정도였다.
물론 추위에 약한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 암세포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빠앙~빠앙~빵빵빵빵!!!'
기기의 메인 조작판을 잡고 계신 차장님이 호출 버튼을 눌렀다.
호출 버튼을 누르면 작업 진행 중 특이사항을 물어보거나 다른 일을 시키는 것이기에 메인 조작판 쪽으로 집중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였다.
그래서 나와 대리님은 곧바로 메인쪽으로 바라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귀구멍에 18년 묵은 초특급 귀지가 가득 차서 청각마저 퇴화한 마지막 생존 좀비 40세 암세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 코일을 감는 부분에 대해 특이사항을 물어볼 예정이였는데, 매우 불행하게도 나와 대리님이 전부 코일 푸는 시작 부분에 있었기에 마지막 부분에는 암하르방만이 있었다.
'빵~빵~빵빵빵빵빵!!!!!'
20초 가량 호출 소리가 계속 들렸는데, 정말 놀랍게도 돌하르방의 자손이라도 되는지 어떠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보다 못해 내가 직접 가서 보게 되었다.
"잠시만 나와봐요. 표면 한 번 볼께요."
"..."
아무런 미동도 없이 멍하니 서있는 암하르방이였다.
그리고 상판떼기를 봤는데, 매우 놀랍게도 목토시를 무려 코와 귀까지 덮어놓았고 세상에서 가장 흐리멍텅한 눈만 바깥 세상에 나와있었다.
"귀구멍을 막으니깐 안들리죠. 제품 표면 좀 볼께요."
"어...으어!!..."
좀비가 마법에 걸려서 돌하르방이 됐는데, 섭섭한 용사가 나타나서 마법을 풀어준 마냥 사무러치게 놀라는 암세포였다.
그리고 나는 표면이 어떤지 확인을 할려고 했는데, 정신은 이제 깼는데 몸은 아직 돌처럼 굳어있는지 미동도 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였다.
"표면좀 보게 좀 나오세요."
"...어?"
"?? 표면 좀 본다니깐요?"
"표면 본다고?"
네 X발놈아. 그럼 댁 면상을 쳐보겠습니까.
무려 암하르방은 앞에 말한 것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상태에다가 내가 갑자기 나타나서 깜짝 놀란 것이였고, 이제서야 뭐라고 말했는지 듣고는 물어본 것이였다.
분명 눈을 감고 있던 것은 아니였는데 도대체 어디를 본 것이였을까... 마치 얼음을 한움큼 먹은 것 처럼 머리가 띵했다.
표면을 확인하고 OK 신호을 보낸 뒤 다른 것을 하러 갈려는데 차장님께서 부르셨다.
"점마(암세포) 뭐하고 있데?"
"그냥 서있던데요... 말해도 듣지도 못하는데, 장담하는데 귀가 안좋은 것은 둘째 치고 영혼이 다른데 가있어서 못듣는겁니다."
"하... 진짜..."
긴 한숨을 내쉬었고, 암세포를 불렀다.
다행히 이번에는 웬 일로 빨리 알아듣고 왔다.
"저기 도겸씨, 귀도 잘 안들린다면서 귀까지 다 덮으면 어떡해요? 일하기 싫어요?"
"아....음..."
"추워도 귀는 열고 들을 것은 들을 수 있어야죠. 그리고 도대체 뭘 보고 있던거에요?
"위에...저거보고...있었어요..."
"위에 저게 뭔데요?"
"저거 위에....표면 보고 있었어요."
'표면'이라는 단어를 알다니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였다.
그리고 모두가 암세포를 보고 머라하기만 해서 그런지 신기할 정도로 더 이상 쳐웃지도 않았다.
돌하르방은 웃고 있는데 암하르방은 웃지 않으니 기분이 매우 이상했지만, 그래도 퇴화에 퇴화를 거듭하는 와중에 나름 장족의 발전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 같아서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랑말랑 했다.
얼마 뒤 12월 27일, 전체 회식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눈물을 흘릴 뻔한 정도로 큰 감동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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